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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s GOTY 2018

올해로 벌써 6회째를 맞이한, Z's GOTY 시간이 돌아왔다!

(1989년도부터 정리했지만, 그걸 Z's GOTY로 이름 붙여 처음 올린 건 2013년)


그럼 바로 후보작과 선정작들을 만나보자!



모바일 부문


우리나라의 게임 시장이 모바일 위주로 변화된 까닭도 있겠지만,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거치형 게임보다 휴대형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이 더 잦아진 것 같다. 모바일 게임 시장도 점점 자리잡으면서 꽤나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고, 올해는 특히나 흥미로운 타이틀이 많이 공개된 것 같다.


1. 야생의 땅: 듀랑고

(What! Studio)

화이트데이와 마비노기 영웅전의 개발자로 알려진 이은석 디렉터의 새로운 도전작, 야생의 땅: 듀랑고.

여러 모로 새로운 도전인 이 프로젝트는 조직부터 데브캣에서 왓!스튜디오로 독립한 새 조직을 꾸려서 시작된 데다가 흡사 태초의 MMORPG라 불리던 울티마 온라인 시절의 끈끈한 관계성을 무려 모바일 환경에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의 모바일 MMORPG란 마을만 로비로 구성된 Fake MMO 이거나, 리니지2 레볼루션처럼 퍼시스턴트 필드에 대규모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사냥을 벌이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듀랑고는 자유도로 대표적되는 울티마나 마비노기의 다양한 플레이어 행동을 담아내면서 전투를 하지 않고 건설, 요리, 제작 등의 생활형 직업만으로도 최고 레벨을 달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울티마나 마비노기에서도 최소한의 전투가 모두의 필수 교양처럼 여겨졌던 것에 반해, 굉장히 본격적으로 직업 다양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작품.

더욱 놀라운 점은 보통의 게임이 시스템의 최소 보장 장치로 구축한 NPC의 기성 문화 영역(도시나 마을 등의 공간과 그 안의 구성)을 최소한으로 제한해 대부분의 공간과 기능과 물자들이 다른 플레이어들이 직접 건설/생산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아마 이만큼 강력한 MMO 디자인은 앞으로도 다른 플랫폼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본다.

이토록 실험적이고 개척정신이 넘치는 작품이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 시작 부분인 기차 프롤로그의 압도적인 몰입감과 황망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는 K의 안내가 끝나고 자기 자신의 사유지를 건설, 무언가에 홀린듯이 바닥에 떨어진 모이 따라가는 비둘기가 된 것처럼 정신없이 몇 시간 동안 무언가를 짓고 만들던 그 말도 안되는 흐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며칠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뚝 끊겨버리는 순간이 온다. 아마 개인적으로 오프라인 지인들과의 제대로 된 부족 생활을 영위했다면 양상이 달랐거나 그 시기가 더 뒤로 밀렸을 수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무한한 자유도의 바다에 덩그러니 던져져 갈 곳을 잃어버리는 야생 미아 현상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말초적으로 블럭 단위를 수집/재배치해 월드 전체를 자신이 가꾸는 마인크래프트식 코어 창조 플레이나, SF라는 장르적 이점을 살려 우주 개척의 로망과 우주 전쟁이라는 로망을 동시에 거머쥔 이브 온라인식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 둘조차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이 샌드박스 장르의 미아 현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게임이 스스로 이같은 미아 현상을 완화하거나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게임 밖의 삶에서부터 자의적 선택과 목표 설정이 충분히 학습되어 있지 않다면 완전한 해결은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마인크래프트와 이브온 그 사이 어디쯤에 듀랑고가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제 서비스 1주년이 되어가고 있으니 마인크처럼 창조 플레이를 더욱 개발할 지, 이브온처럼 사회적 플레이를 더욱 개발할 지, 아니면 자신들이 스스로 개척해 온 첫 걸음처럼 이 다음의 걸음도 두 선택지 대신 전혀 다른 새 길을 개척해나아갈 지, 앞으로의 행보 역시 기대가 된다.

MMORPG라는 장르 뿐만 아니라 PC방 사업 및 가상 재화의 거래라는 사회적 인프라 자체를 번성시켰던 리니지 쇼크 이후로, 이만큼 "의미 있는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적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왓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전반적으로 이처럼 의미 있는 작품의 개발에 좀 더 시간과 비용을 할애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떠오르는 개발중인 타이틀 중에선, 리틀 데빌 인사이드나 페리아 연대기 정도가 떠오르지만, 이들 모두 플랫폼이 콘솔 또는 PC인 것을 감안해보면, 듀랑고가 모바일로 출시된 건 역시 여러 모로 놀랄만한 부분인 것 같다. 비록, 실제 플레이 패턴이 PC판의 눌러앉아 진득하게 플레이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D




2. Hole.io

(Voodoo)

2015년 "아가리오(Agar.io)"라고 알려진 웹 게임이 크게 흥행을 기록하면서 주소를 .io 로 공유하는 같은 매커니즘을 가진 수많은 게임들이 io게임이라는 장르로 분류되며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기본 매커니즘은 멀티플레이로 먹이가 되는 무언가 또는 타인을 섭취하며 성장해, 크기를 경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많은 io 게임들이 기능 그 자체에 충실한 비주얼로 개발 효율을 최대한으로 뽑아낸듯한 모습이었던 것에 반해, Hole.io는 비교적 번듯하게 만들어진 3D 월드에 햅틱 반응과 물리 엔진을 적용해 보다 그럴싸한 시각적&말초적 쾌감을 선사한다. (io게임목록 나무위키 페이지를 봐도 알 수 있듯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해본 게임이 많지 않아 정확한 비율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본 적 있는 작품들의 특징을 통칭한 것.)

Hole.io의 플레이어는 싱크홀이 되어 마을의 온갖 존재를 삼키면서 구멍 크기를 크게 만들 수 있다. 자세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대략 두 세 개 정도의 레벨을 랜덤하게 배정해주는데 구성 기조 자체는 어딘가에 있는 작은 물건들을 모아 점차 큰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구성된다. 시작 지점은 랜덤한데, 의도적으로 위치를 바로 파악하기 어렵게 주로 사거리에서 시작한다. 플레이 흐름은 대략적으로 "현재 위치 파악 → 유리한 지점 탐색 및 이동 → 타인 견제 및 성장 지속"과 같다. 다양한 모드가 추가되면서 최초의 게임 모드를 클래식이라고 부르는데, 클래식 모드의 플레이 타임은 2분으로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한 판의 시간으로 구성되어, 한 판만 더 해볼까?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기 좋게 짜여있다.

클래식 모드는 7명의 플레이어가 2 분동안 제한된 자원 안에서 순위를 경쟁하는 방식이며, 솔로 런 모드는 2분 동안 혼자 몇 퍼센트의 구조물을 삼킬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방식이고, 배틀 모드는 일정 시간 뒤 자원이 재생성되는 공간에서 시간 제한 없이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나(혹은 최대 크기까지 커지나)를 20명의 플레이어가 경쟁하는 방식이다. 또한 각종 조건을 만족시키면 (구멍 주변을 꾸밀 수 있는)스킨을 획득할 수 있어, 보다 직접적인 동기 부여 장치로 동작한다. 최근 업데이트로는 두 가지 테마의 배경을 추가했는데, 하나는 기본 마을 구성을 미래 도시로 스킨만 바꾼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구성 자체를 완벽하게 새롭게 만든 해적 군도(섬들의 모음) 형태이다. 개인적으론 이 해적 테마가 기존과 다른 트인 구조과 다채로운 볼거리의 구성(범고래 같은 게 떠다닌다!)으로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복잡하고 스케일 큰 게임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은 이렇게 독특한 아이디어 기반의 코어 매커니즘에 집중하는 컴팩트한 구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요즘도 가끔 주변 분들에게 추천해줄 목적이거나, 아주 약간의 짬이 날 때 종종 켜보곤 하는 마지막까지도 선정작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든 굉장한 마성의 게임이다.



3. Cytus ll

(Rayark)

원래 리듬 액션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전작인 Cytus 1편은 전에 본 적 없던 화면을 위 아래로 왕복하는 판정선과 터치 디바이스를 활용한 터치&슬라이드 조작 방식의 노트가 주는 색다른 경험에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 후속작인 Cytus 2편도 굉장히 기대를 많이 갖고 있었다. 다소 가격이 좀 있는 유료 어플리케이션이라 할인 시기를 노리고 있었는데 운 좋게 "레이아크(개발사) 무료 주간" 이벤트로 개발사 작품들이 전무 무료로 풀렸을 때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워낙 곡들의 라인업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게임의 바깥 고리에서 진행되는 서사 진행과 연출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1편은 딱히 서사랄 것 없는 순수한 곡들의 모음과 묶음 단위의 테마를 챕터로 명명한 정도의 기본적인 구성이었으나, 이 개발사가 만든 다른 리듬 게임인 보이즈나 디모 등에서 리듬 게임에 스토리를 엮는 시도들을 계승-발전시켜 이번 작품에서 그 빛을 폭발시켰다고 생각한다.

챕터 개념을 캐릭터로 치환하고, 플레이하면서 캐릭터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하면 잠겨있던 다른 곡들이 해금되거나 보이지 않던 숨겨진 곡이 추가된다. 그리고 마치 누가봐도 트위터처럼 생긴 게임 속 가상의 SNS를 통해 캐릭터들과 팬들이 소통하는 대화를 지켜보면서 게임의 스토리가 전개되게 되는데, SNS의 대화 방식을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는 방식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듀랑고의 생존 일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정 시점 이후에 전개되는 해킹 연출이 굉장히 압도적이었다.

스포일러를 피해 최소한의 정보를 설명해보자면, 게임 진행 중 마치 난입하듯 히든 트랙이 재생되고 해당 곡을 마친 이후에 캐릭터 및 곡 선택 화면 자체가 마치 게임이 고장난 것처럼 표시된다. 매우 당황하며 다른 곡을 무언가 플레이하고 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게임 화면으로 돌아와 있다. 그리고 SNS 상에서 이 해킹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인물들이 술렁이면서, 그제서야 내가 겪은 그 해괴한 장면들이 진짜로 게임이 잠시 고장났던 게 아니라 의도된 연출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는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처음 구동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첫 곡을 플레이시키며 프롤로그와 튜토리얼을 병행시켜버리는 제작사의 놀라운 자신감과 재치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때, 게임이 게임으로서 플레이어에게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단지 영상이나 글자를 보여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리듬 액션 게임에서 서사 전달과 연출 부분에 감탄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다.




4. 에픽세븐 (선정작)

(SUPERCREATIVE)

최근에는 일반 난이도 10-10 엔딩까지 완료하고 월드 난이도를 플레이하고 있는데, 와중에 사이드 컨텐츠들 진도를 나가면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이벤트인 서브 스토리를 즐기고 다양한 영웅을 육성하면서 장기적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건 굉장히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이라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올해의 모바일 부문 Z's GOTY 선정작으로 꼽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다운로드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도탑전기와 세븐 나이츠로 대표되는 양산형 턴제 모바일 RPG의 1 of them 이라고 생각해 플레이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대로 앱을 삭제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 정말 우연히 페이스북 할로윈 광고를 보고, 취향저격의 호박 마녀 캐릭터를 보고 "어머 이건 해야해!" 라며 뒤늦게 게임을 구동했다.

첫 번째 쇼크는, "우와 오프닝 애니 쩔어!" 였다. 그리고 "뭐, 오프닝 쩌는 건 이거 말고도 많았으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두 번째 쇼크는, "우와 필살기 연출 쩔어!" 였다. 그리고 "뭐 턴제 RPG에서 필살기 연출이야 뭐, 다른 작품들도 화려하니까."하고 어찌저찌 넘겼다. 세 번째 쇼크는 "우와 오프닝급 애니가 계속 나와!" 였다. 이젠 넘길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거부할 수 없는 대작의 운명이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향기가 짙게 베어있는 Live2D 일러스트, 스토리 및 프로모션 애니메이션, 도트 캐릭터, 배경 들이 UI와 더불어 굉장히 일관된 톤으로 정돈되어 있는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보통의 수집형 RPG는 성(★)급이 높을 수록 고퀄리티의 일러스트가, 반대로 낮을 수록 저퀄리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에픽세븐은 놀랍게도 5성급 영웅이나 보스 몬스터 뿐만 아니라, 3성급 일반 영웅 및 필드 잡몹 까지도(!!) 고퀄리티의 일러스트와 Live2D로 표현되고 있어 게임의 매력이 퇴색되지 않았다.

아웃 게임, 메타 게임 이라고도 불리는 순환 플레이 사이클 구조는 밀도 높은 성장 시스템과 엮이면서 플레이어를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의 나선으로 끌어당긴다. HIT처럼 단일 영웅을 육성하는 게임처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면서도, 그 성장에 필요한 재화들을 얻기 위한 각각의 컨텐츠들 역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멀티 히어로 게임에서 필연적으로 복수의 캐릭터를 육성하도록 푸시하는 장치인 속성 시스템과 PvP 상성 등을 이용해 꾸준히 여러 캐릭터를 육성하도록 플레이어를 압박하지만, 그 압박의 정도가 달성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부담이라기보다 기분 좋은 자극처럼 받아들여진다.

또한 기본 전투가 완벽한 턴과 페이즈 방식이 아닌 차일드 오브 라이트의 타임라인 시스템이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APB 시스템처럼 각 캐릭터가 개별 속도를 갖는 반턴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전투 변수가 전황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지루함이 여느 턴제 RPG보다 압도적으로 덜하다.

이 게임의 큰 단점은 두 가지 정도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가챠 외에 지속적으로 수익이 날만한 아주 매끈한 수익모델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다분히 손으로 붙잡고 수동으로 하라고 만들어진 구성이라 플레이 타임을 굉장히 막대하게 집어삼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가 너무 재미져서, 뭐라도 상품 하나 더 사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플레이 해주고 싶은, 개인적으로는 마치 10대 때 너무너무 재미있게 즐겼던 고전 SRPG인 TGL 사의 게임들을 다시 그 때 그 기분으로 하는 것처럼, 아주 취향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게임이라 무척이나 기쁘고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다.

참고로 처음 게임을 켜게 만든 그 호박 마녀 영웅은, 아직도 못 얻었다고 한다....가챠게임망했으면




온라인 부문


수가 많진 않아도, 온라인 게임을 그래도 몇 편은 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다행히 이야기해볼만한 세 작품을 꼽아봤다.



1. World of WarCraft: Battle for Azeroth

(Blizzard Entertainment)

격전의 아제로스(이하 "격아")는 한 동안 세계를 위협하는 외부 세력을 단합된 힘을 통해 물리치는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희미해진, 시리즈의 근간과도 같은 진영 대립 구도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면서 전에 없던 굉장한 관심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

"포 더 호드!" "포 디 얼라이언스!"

라는 구호 아래 오래된 아제로스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무구에 켜켜히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키보드와 마우스를 부여잡고, 비장미 넘치게 아제로스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군단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동시에 격아의 시작을 알린, 임팩트 넘치는 세기말 이벤트인 가시 왕좌 스토리, 그 중에서도 로데론 공방전은 단연코 역대 와우 시리즈의 시나리오 컨텐츠 중에서 플레이어들을 가장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으로 몰아넣는 매력적인 컨텐츠였다.

하지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위대한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전쟁을 뒤로한 채, 뜬금없이 "자네가 이 섬을 아군으로 잘 포섭해줘야 우리 진영이 전쟁에서 유리해질 수 있네!" 라며 새로운 섬으로 플레이어를 내몬다. 분명 많은 과거의 영광을 가슴 속에 간직했던 아제로스 용사들은 격정적인 오프닝 시네마틱 무비를 보면서 "다시! 다시 아제로스로!" 라고 외치며 전의의 불꽃을 뜨겁게 태웠을텐데.

그리고 그 섬들의 컨텐츠라도 괜찮았다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컨텐츠인 "군도 탐험"이나 "격전지"도 큰 재미를 안겨주진 못했고, 군단에서 획기적으로 재정립한 엔드 게임 사이클도 크게 진보했다기보다 오히려 일부 퇴보한 구석마저 보이면서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관련 포스트 - [GDF] 격전의 아제로스에서 필드 컨텐츠가 붕괴된 이유는?)

그래도 아직 8.1, 8.2 패치와 같은 "다음"이 남아있기 때문에, 보다 나은 다음들이 이어지기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려본다.

(사실 12월 12일 8.1 업데이트가 적용되었지만, 그 전에 결제가 만료되어 아직 해보지 못해 본인 입장에서는 "다음"이 되었다...)




2. Destiny: Guardians (선정작)

(Bungie)

사실 슈터 장르(a.k.a. 총게임)를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슈터 특유의 과도한 긴장감과 찰나에 생사가 갈리는 극한의 피지컬 대전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한 번의 전투가 너무 단 시간에 끝나지 않는 다른 액션 게임이나 대전 게임들에 비해 플레이한 가짓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유명한 FPS 시리즈들인 콜오브듀티 시리즈라거나 헤일로 시리즈는 단 한 편도 해본 적이 없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서든어택조차 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2D 시절의 Doom 2나 Heretic을 제외하고 3D 게임을 꼽아보자면, 퀘이크3, 레인보우식스, 블러드2, 네츄럴셀렉션2, 보더랜드2 정도일 뿐이다. 오버워치를 새로운 인생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위에서 꼽은 과도한 긴장감과 지나치게 짧은 전투 시간과는 완벽하게 상반되는 기조로 디자인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데스티니는 주변에서 굉장히 호평 일색의 작품이었고, PC로 발매되기 전 1편을 와이프가 할 때 뒤에서 구경하기로는 때깔이 굉장히 좋은, 우주 배경의 하이퍼 계열 FPS처럼 보였다. RPG 요소는 사실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래도 헤일로 제작진이니만큼, 패드로 찰진 손맛을 주는 슛 감각을 구사하는 슈터 장르의 기본이 탄탄하구나하는 정도의 인상을 받았었다.

마침내 2편의 정식 한국어버전이 사랑하는 블리자드 런처에 붙어서 공개되면서, 그리고 그에 따라 PS4 판이 무료로 풀린데다(물론 이미 와이프가 사 둔 상태라 무료 혜택을 보진 못했지만) 심지어 한국어화까지 적용되어 있어서, 지금이다! 싶어서 데스티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집에 PC도 한 대, 콘솔도 한 대라 와이프가 게임할 때는 와이프가 게임하는 걸 구경만 하는 편인데(원래 구경도 재미있게 잘 하는 편이다.), 가디언즈가 PC로 나오니 와이프가 PC를 쓰게 된 덕분에 PS4가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캐릭터 점프를 쓰면 본편과 두 편의 DLC를 스킵해버리기 때문에 안그래도 1편 안해서 앞 내용을 모르는 입장인데다 원래 스킵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 포세이큰 직전까지만 PS4로 해보고, 포세이큰이 되면 PC로 해야지!라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막상 뚜껑을 열어본 데스티니 가디언즈는, 기대 이상의 물건이었다.

MMOFPS 라는 장르는 반도의 슬픈 이름 헉슬리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그 중 국내 정식 서비스도 이뤄지지 않았고 큰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Red 5 Studio의 파이어폴이라는 작품을 나름 의미있게 즐겼기 때문에 장르 자체에 대한 기대는 있는 편이었다. 파이어폴이 RPG 베이스에 슈터 전투를 살짝 가미한 정도였다면, 데스티니는 그 정 반대로 FPS 베이스에 RPG의 장비 수집/성장 요소를 살짝 가미하고 있다.

총을 쏘아 맞추는 맛이 기본적으로 탁월한데, 광활한 우주의 다채로운 풍경과 그곳을 수놓는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크리쳐들의 레이저 광선이 펼쳐내는 모습이 꽤나 미학적이다. 일단 이전까지의 FPS들이 (일부 호드 모드나 좀비 모드를 제외하면) MO방식의 PvP에 치중하고 있던 것에 반해 데스티니의 기반은 PvE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PvP 거부감이 강한 플레이어도 다소 멍청한 (가끔씩 동작과 동작 사이에 멈추는 시간이 있어서 그 때 쏘면 원하는 곳이 매우 잘맞음) 크리쳐를 상대하는 맛이 매우 훌륭하다. 크리쳐 디자인도 각각의 팩션들의 특징들을 잘 나타내고 있는 데다, 팩션 내 포지션도 서로 비슷하게 구성하고 있어서, 똑같은 적을 만날 일을 줄이면서도, 새로운 적을 만나도 다른 적과 싸우던 패턴을 떠올려보면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든 방식이 학습 난이도를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루팅의 쾌감이 굉장한데, 성장 구간에서 장비 파츠 하나하나를 획득할 때마다 캐릭터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이는 흡사 이쪽 장르의 바이블인 디아블로 루팅의 맛과도 견주어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여타 온라인 게임의 구성과 다른, 깔끔한 종결 지점의 선언도 매력적인 요소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플레이 타임을 늘이기 위해, 가장 맛있는 코너를 맨 뒤에 놓고 앞에서 시간끄는 바람잡이처럼 구성된 것이 여타 온라인 게임의 엔드 게임 구성이라면, 데스티니는 일반 캠페인을 따라 진행하면 가장 맛있는 메인 디쉬를 다 맛볼 수 있고, 나머지는 "그래도 여흥이 가시지 않으셨다면 좀 더 머무셔도 좋습니다!"에 가까운 자비로운 사이드 컨텐츠의 다소 느슨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히려 차별화된 장점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시나리오 엔딩 보고 (물론 진짜 엔딩은 레이드에 연결되지만) 적당히 필드 컨텐츠나 PvP 또는 갬빗이라는 이름의 PvEvP 컨텐츠도 맛보고 한 달 정도 재미있게 즐기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시즌 패스를 구입하지 않았으니 가디언즈 복귀 각은 잘 서지 않겠지만, 데스티니 3편이 나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구매할 것 같은 기분은 아주 많이 든다.




3. 로스트 아크

(Smilegate RPG)

요즘 대세로 확실히 자리잡은 것 같은, 스마일게이트의 회심의 큰 한 방 로스트 아크.

나름 리니지 이터널과 함께 새 시대의 PC MMORPG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이터널은 출시 연기와 대대적인 리디벨롭 과정을 거치면서 TL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로스트아크가 대중들 앞에 먼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주변 지인들의 평가를 빌자면, "딱히 빼어나다고 말할만한 부분은 없지만, 딱히 빠진다고 말할 부분 역시 없다."거나 "이건 마치 새벽 4시 반의 김밥천국"는 표현 등을 통해, 경쟁자가 없는 대체 불가의 영역에 당당히 선점 깃발을 꽂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차례 MMORPG의 광풍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모두가 MMORPG를 그리워하지만 모두가 만족할만한 마땅한 대안이 없이 대 모바일의 시대를 맞이해버린 이후, "다시 MMORPG"라는 자신만만한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놀라운 물량으로 등장한 로스트아크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게임이었다. 보통 MMORPG는 컨텐츠의 물량이 갖는 이점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먼저 서비스를 시작해 다년 간 컨텐츠가 쌓이고 시스템들이 다듬어진 선배 게임들을 신생 게임이 이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로스트아크는 앞선 게임들의 대략 수 년치 분량을 첫 오픈 때 투입한 것같은, 그야말로 "개발비 태운 티가 나는" 물건처럼 위용을 뽐냈다. 보통 개발이 진행되다 보면 프로젝트가 길어지면서 많은 내용들이 없어지거나 바뀌기 마련인데, 마치 로스트아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추가되어 쌓이기만 한 것처럼 온갖 요소들이 잔뜩 들어있는, 그야말로 전통적은 MMORPG의 다양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꾸역꾸역의 기분으로 어떻게든 만렙까지 하고 있는, 그다지 유쾌하진 않은 기분으로 플레이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콕 찝어서 말할 수는 없는, 그 오묘한 지루함이 전반적으로 느껴져서, 분명 만렙까지 요구 플레이 타임이 길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굉장히 더디게 나가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 이 불편함이 느껴지는 지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정말 "단지 취향의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초반에 느꼈던 인상적인 점들을 정리한 포스팅 링크로 이야기를 마쳐볼까 한다.

관련 링크 - [GDF] 로스트아크 초반 감상

덧. 혹시라도 관계자 분 중에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부디 말탑승 시 뷰 조정을 좀 해주셨으면 한다. 각을 위로 좀 더 올리거나, 높이 올라탔음을 반영해 줌아웃을 좀 더 해주거나.. 말 위의 캐릭터가 아니라 말이 내 캐릭터처럼 보이고 뷰가 심히 답답해진다.... TT^TT



오프라인 부문


안그래도 적은 게임 플레이 타임을 모바일 게임과 온라인 게임으로 대부분 소비당한 덕분에 오프라인 게임은 굉장히 적게 경험한 데다, 그나마도 대부분을 직접 플레이 대신 와이프 플레이의 구경으로 대체한 덕분에 리스트 자체가 굉장히 빈약해졌다. (모두의 고티 후보인 갓옵워와 레데리2를 모두 관전만 했다.)

부디 내년에는 좀 더 높은 "투 플레이 타이틀 진행율"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시간을 잘 안배해야겠다. (할 게임이 밀려서 쌓였다는 이야기이다....orz)



1. Horizon: Zero Dawn

(Guerilla Games)

이미 작년에 Z's GOTY 2017 오프라인 부분 선정의 영예를 안은 호제던이 다시 리스트에 올랐다. 올해 드디어 엔딩을 봤기 떄문이다. 이 작품은 첫인상도 훌륭했지만, 마지막까지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특별히 2년 연속으로 리스트에 올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게임의 시스템 설정을 세계관 안에 녹여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플레이어의 존재, 혼재된 요소들의 정체, 심지어 크리쳐의 리젠마저도 설정으로 풀어내고 있어 감탄하게 됐다. 특히 중반 이후로 접어들어 게임의 깊은 이야기가 진행될 때부터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더 깊은 몰입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몰라도 이야기를 감상하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지만 아무래도 느낄 수 있는 재미의 크기가 확연히 달라질 것 같다.

DLC 말고 2편이 나오면, 꼭 플레이해보고 그 해의 Z's GOTY에 다시 올릴 수 있길 기대해본다.




2. Overcooked 2 (선정작)

(Ghost Town Games)

게임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이 있어야 하고, 무엇이 어때야 한다.는 등의 온갖 기정화 된 내용들을 과감하게 치워버리고 게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게임. 다른 이들에겐 어땠을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플레이 해 본 오버쿡드 2가 그런 작품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임의 본질은 바로 "플레이를 통한 재미"이다. "플레이"는 게임이 다른 미디어들과 구분되는 정체성 그 자체이며, "재미"는 모든 게임이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궁극의 가치이다. 그리고 이 오버쿡드2는, 얼핏 우정파괴 게임이나 파티 게임처럼 보일 수 있는 구성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고 있는 동안 너무 재미있는 게임"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나 "요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이처럼 한없이 액션 게임에 닿아있는 말초적인 조작-피드백으로 심지어 협동 플레이를 이뤄낸다는 게 대단히 놀라운 지점이었다. 또한 산업이 길게 이어지면서 최초의 의미가 다소 퇴색한 "레벨 디자인"이라는 의미도, 굉장히 원론적으로 "이것이 스테이지 디자인입니다 여러분"이라며 강렬하게 경험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처음엔 당장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엉망진창우당탕쿵탕 대잔치가 벌어지지만, 차차 매 스테이지의 디자인 의도를 이해하면서 불필요한 동선이 사라지고 마침내 3성 달성을 아득히 넘는 스코어를 달성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레벨 디자인과 학습 곡선 루프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난이도 자체가 높아 현재 5-5라는 진도에 멈춰있지만,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플레이를 이어가다보면, 지금까지 그랬든 디자인 의도를 발견해내고 클리어해내는 기쁨을 맞이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포터블 부문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단 한 차례의 포터블 게임도 경험하지 못한 한 해였다.

따라서 별도의 타이틀을 플레이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포터블 부문은 선정을 중단하기로 한다.



작년에 목표로 설정했던 두 가지 장기 목표인 "와우 전 클래스 최고 레벨 달성"과 "오버워치 모든 영웅 10 시간 이상 플레이" 중, 오버워치의 것은 달성해냈다는 기쁜 소식을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두와 나누고 싶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공개된 "애쉬"까지도 10시간 플레이 완료!)

비록 위에서 설명했듯 와우 격아가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고, 또한 군단처럼 굳이 직업 별 경험을 따로 제공하고 있지 않기도 한 덕분에, 목표는 높아진 120 레벨이 아닌 작년과 동일하게 110레벨 달성으로 유지하기로 했지만, 어쨌든 새로운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한 편으로는, 기존 타이틀들의 장기 과제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부디 게임을 멈추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올해도, 공식 질문으로 글을 맺어볼까 한다.


"2018년, 여러분의 GOTY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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