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매된 강령술사를 재미있게 플레이하다가 문득 생각난 디아블로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관통하는 블리자드의 스킬 트리 시스템의 흐름에 대해서 트위터에 재잘재잘 쓴 것을 한 곳에 모아봤습니다.

이 글은 GDF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gdf.inven.co.kr/t/topic/610




갑자기 생각난 블리자드의 스킬 트리 흐름.

디아블로2 시절엔 1레벨 당 1 스킬 포인트라는 획득처의 제한으로 얻기도 매우 귀했지만, 초기화가 매우 어려워 잘못 찍거나 메타가 바뀌면 캐삭을 해야하는 아주아주 무서운 요소였다.
그리고 캐릭터>아이템의 구도였던 디아블로1에서 캐릭터<아이템의 구도로 바뀐 2편이었기에, 나중에는 스킬 포인트의 추가 획득 자체를 아이템에서 소화하게 된다. "뫄뫄 스킬 레벨 +n" 같은 옵션이 아이템에 붙어버리게 된 것.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레벨업으로 획득한 포인트를 투자하고 나서, 부족분을 채우거나 몰빵한 부분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식으로 아이템에서 획득한 스킬 포인트를 추가로 얹어서 캐릭터 빌딩을 하게 된다. 렙업과 파밍은 모두 노오력이 든다.

그리고 이를 계승-개선-발전시켰다고 평가되던 것이 와우의 특성 트리였다.
1레벨 당 1포인트 + 특성 당 누적 포인트를 달성해야 다음 행(row)을 투자할 수 있는 방식은 좀더 쉽고 직관적으로 보였다. 아랫 줄에 있을 수록 강하다는 것도 명료했고.
와우의 레벨업은 그 자체가 목적인 디아블로와 달리 만렙 달성 이후 엔드 컨텐츠에 사람을 몰아넣어야 하는 장르 특성상 디아블로에 비해 무척이나 쉬웠다. 때문에 특성 포인트의 습득도 쉬운 편이고, 심지어 돈은 들지만 초기화가 무제한이라(!) 부담도 없다.
오리지널 특성은 마치 디아2처럼 세 특성 중에서 조건만 맞으면 모든 특성을 동시에 찍을 수 있었다. 이는 와우가 확팩을 거듭하면서 아무거나 찍지 못하게 특성을 골라야 하는 선택지 형태로 점차 변화해갔다. 그리고 그 선택지가 다시 디아3로 넘어간다.

디아블로3의 스킬과 룬 시스템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한 개의 스킬이 룬이라는 옵션을 통해 성격이 다른 스킬로 분파하게 됐고, 그 스킬 자체는 총 6가지를 자유롭게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스킬/룬 전환에 드는 제약은 오직 "전투중이 아닐 것" 뿐.
이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스킬과 룬의 조합을 바꿔가면서 여러 가지를 공격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었다. 무려 캐릭터를 삭제하지 않고도! 덕분에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많은 우버한 트리를 찾아냈고, 블리자드식 밸런싱으로 모난 부분은 깎여나갔다.
하지만 적당히 역할에 맞는 스킬셋을 맞추고, 그 다음은 필요한 스탯을 올리는 것에 주력하던 와우의 아이템 파밍과 달리, 디아블로의 아이템은 2편의 것처럼 스킬에 영향을 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전설 아이템 옵션과 세트 아이템 효과가 그것이다.
디아블로3를 하다보면, 스킬과 룬을 자유롭게 교체한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6개의 스킬 슬롯과 스킬당 1 개의 룬이라는 제약이 생각보다 성가시게 느껴진다. 이는 마치 캐릭터가 반쪽짜리가 된 것 같은 찜찜함을 준다.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 다량의 세트 아이템이 추가되면서 이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 디아블로3의 스킬 구조는 의도된 반쪽짜리인 것이다. 그 부족분은 2편처럼 아이템 파밍을 통해 완전하게 채워내도록 설계되어 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디아2 - 와우 - 디아3까지 이어진 흐름은, 다시 와우의 다음 확장팩으로 이어졌다.
직전의 드군과 최근의 군단은 디아블로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나는데 특히 아이템 획득의 랜덤성과 아이템에 붙은 스킬 관련 옵션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와우는 디아블로처럼 랜덤한 파밍이 게임의 목적이 아니라, 빠르고 착실하게 상위 컨텐츠를 공략해 스탯을 쌓아올리고 더 쎈 컨텐츠를 깨부시는 것이라 랜덤 보상을 받쳐줄 확정 보상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유물력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디아블로2의 스킬 트리가 와우의 특성 트리가 됐고, 확팩을 거치며 선택지 형태로 변경된 특성 트리는 다시 디아블로3의 스킬 룬이 됐다는 구조적인 흐름이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바로 "트리의 완성에 드는 노력의 형태"다.
디아블로2와 3는 핵앤슬래시 파밍게임의 특성에 따라 확률 보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의 성능으로 스킬 트리를 완성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와우는 엔드 컨텐츠가 다인이 필수이기 때문에 확률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없고 확정 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확정 보상을 퍼줄 수는 없고, 정액제라 시간도 뽑아먹어야 되니, 마치 옛날 게임의 렙업에 드는 노오오력 처럼, 유물 무기의 유물력이라는 누가봐도 레벨업 경험치처럼 생긴 것을 모으는 노오오력으로 자신들이 버렸던 옛 특성 시스템을 되살리고 있다.

디아/와우에서 주어진 스킬과 특성을 완성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은 만렙만 찍으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지만 기본 제공되는 스킬/특성셋은 반쪽짜리고, 템파밍 또는 유물력파밍이라는 노오력을 해야만 완성에 다다르게 만들어져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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